경제이야기/콘텐츠·IP

서울캐릭터페어 역사(2), 서울캐릭터쇼와 대한민국캐릭터페어

polplaza 2021. 2. 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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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09년 5월 출범한 한국콘텐츠진흥원(원장 이재웅)이 한 달 후인 6월 서울캐릭터페어를 '서울캐릭터·라이선싱페어'로 일방적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 부분은 뒤에 다루기로 한다. 

2002년 8월 10일.
서울 COEX 전시장에서 '제1회 대한민국캐릭터페어'가 성대하게 막을 올렸다.
그 시각,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는 '제2회 서울캐릭터쇼'가 개최됐다. 같은 성격의 2개의 전시회가 같은 날 열린 것이다. 횟수로 따져볼 때 대한민국캐릭터페어는 열려서는 안 되는 전시회였다. 서울캐릭터쇼가 2001년 첫회를 성공적으로 열렸기 때문에, 굳이 대한민국캐릭터페어를 만들어서 강행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2002 서울캐릭터쇼가 열린 서울무역전시장 입구에서 자원봉사자들)


따라서 대한민국캐릭터페어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강행됐다. 서울캐릭터쇼가 산업자원부의 후원을 받는 행사였기 때문에 문화부는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대한민국캐릭터페어를 강행했다. 바로 부처가 달랐던 것이다. 부처가 달랐기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문화부의 공무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산자부가 이미 시작하여 성공을 거둔 전시회에 맞서 정면으로 이름만 바꾼 '대한민국캐릭터페어'를  주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문화부는 전시회 한 달 전까지 '2002 캐릭터수퍼페스티벌'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캐릭터페어'는 개막일을 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급작스럽게 수정된 것이다.

문화부는 2002년 연초부터 산자부를 향해 '2002 캐릭터수퍼페스티벌'을 공동 주최할 것을 제안했다.
아니, 서울캐릭터쇼가 있는데, 서울캐릭터쇼를 산자부처럼 후원하면 될 것이지 캐릭터수퍼페스티벌을 급조해서 공동 주최하자고 한 속셈은 무엇일까. 산자부는 2001년도 서울캐릭터쇼의 예산을 지원하면서 후원하는 것으로 그쳤다. 정부가 어떤 행사를 주최하여 생색을 내기보다 산업을 육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때까지 산자부는 서울캐릭터쇼를 후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화부는 춘삼월이 오자 산자부에 캐릭터수퍼페스티벌을 공동 주최할 것을 거듭 요청했다. 산자부는 한국캐릭터협회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공동 주최하는 '서울캐릭터쇼'를 후원해야 할지, 문화부가 강력히 요청하는 '캐릭터수퍼페스티벌'을 공동 주최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부 부처 간의 신경전인가, 밥그릇 싸움인가. 언론 등 외부로부터 이런 질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산자부는 결국 정부를 선택했다. 문화부와 싸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문화부의 뜻에 따라 '2002 캐릭터수퍼페스티벌'을 공동 주최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산자부의 산하기관인 한국디자인진흥원도 어쩔 수 없이 문화부 행사에 동참하게 됐다. 산자부는 한국캐릭터협회에 함께 가 줄 것을 내심 희망하는 눈치였으나 협회는 따라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문화부가 내세운 '캐릭터수퍼페스티벌'은 제2의 서울캐릭터페어에 다름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생색 내기식의 주최하는 것 자체가 명분상 맞지 않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여 '대한민국캐릭터페어'의 한 달 전 명칭인 '2002 캐릭터수퍼페스티벌'은 문화부와 산자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과 한국디자인진흥원이 공동 주관하게 됐다. 문화부 산하의 한국캐릭터문화산업협회와 캐릭터디자이너협회는 이 행사의 후원단체가 됐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캐릭터협회였다.
2001년 서울캐릭터쇼의 주최자였던 한국캐릭터협회는 과연 서울캐릭터쇼를 홀로 개최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 예산을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울캐릭터쇼를 독자적으로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부 예산 4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캐릭터수퍼페스티벌과 정부 예산 1원도 지원받지 못하는 서울캐릭터쇼는 이미 승부가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같은 성격의 전시회에, 한쪽은 정부가 주도한다고 수억 원의 예산을 쏟아붓고, 한쪽은 민간이 한다고 하여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세금 내는 국민의 시각에서 볼 때 이건 제대로 된 정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민간의 자율성과 자생력을 키워주지는 못할 망정, 이제 막 자라나는 싹조차 뿌리째 없애버리겠다는 행태였다. 실제 상황이 그렇게 진행됐다.

정부와 민간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자금력을 갖춘 정부가 이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다. 아주 부당한 게임이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서울캐릭터쇼를 진행할 수 있을까.
서울캐릭터쇼, 민간 주도 행사로서 정말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협회 내부에서 고민이 컸다.
정부행사에 동참하면 쉽게 쉽게 갈 수 있는 길인데, 왜 힘들게라도 가야 하는 걸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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